사도세자의 어머니 영빈 이씨는 아들의 비극적 죽음 이후 깊은 상처를 안고 생을 마감했습니다. 1764년 7월 26일 69세로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차마 자식에게 못할 짓을 하였으니 내 무덤에는 풀도 나지 않을 것"이라며 죄책감에 시달렸습니다.
영빈 이씨의 최후와 심경
- 사도세자 사후 3년간 상복을 입고 칩거하였으나, 상기(喪期)가 끝난 직후인 1764년 7월 26일 숨을 거둠
- 매일 밤 동편 툇마루에 앉아 동쪽을 바라보며 "혹시 그때 동궁을 죽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어도 되었을까" 자문
- 혜경궁 홍씨에게 "내 본심은 종사와 나라를 위한 일이었으나, 세손 남매가 나를 이해할 수 있을까" 고백

사후 추모와 역사적 평가
- 1897년 고종 때 선희궁(宣禧宮)을 건립하여 신주를 모심
- 『한중록』에 "어머니로서의 정을 버리고 큰 뜻으로 행동했다"는 혜경궁의 평가 기록
- 현대 사학계에선 왕실의 안정을 위해 어머니로서 최선의 선택을 했다는 해석이 지배적
영빈 이씨의 선택은 당시 왕실의 복잡한 정치적 상황과 세손(정조) 보호라는 현실적 고려가 결합된 결과였습니다. 그녀의 최후는 조선 왕실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모자(母子) 관계의 상징으로 남았으며, 선희궁 유적은 오늘날까지 그 아픈 역사를 전하고 있습니다.
